일본군의 난징대학살 사건에 대하여 일본군의 약탈, 폭행은 세계적인 악명을 남겼다고 한 고교 일본사에 기록하며 전후에 대해 반성을 하였지만. 10년도 채 가지 못하여 1950년대 초부터 우익들의 대대적인 반격이 시작되었다.
■ 1950년대 : 우익의 1차 교과서 파동
1953년 - 일본의 재군비와 자위대
독도 문제를 보는 미국의 입장은 매우 신중하며 중립적일 수밖에 없으며 어느 한 편의 손을 들어줄 수 없는 처지다.
이와 마찬가지로 중국 정부도 철저히 중립을 지키고 있다. 중국은 역사왜곡과 신사참배 문제에 대해서는 남∙북한과 공동보조를 취하며 일본을 압박해 왔으나 독도 문제에서 한국
일본대사관 앞에서 10여년이 넘게 매주 수요 항의집회를 개최함으로써 세계 여론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국내에서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일본의 시민운동은 한국의 민주화운동에 대해 결코 잊을 수 없는 커다란 기여를 했다. 암울했던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일본의 지식인 종교인 사
독도로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그동안 세계의 주요언론은 한일 간 독도논란이 발생할 때마다 주로 한국측 입장을 지지하여 왔으나, 일본 정부의 적극적인 국익외교와 홍보로 점차 일본의 입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특히, 미국의 주요 웹사이트들은 독도를 일본해에 있는 분쟁지역으로 소
일본이 틈만 나면 독도가 일본의 영토임을 주장해오고 있다.
이에 대하여, 현재 우리나라는 어떤 입장과 대책을 가지고 있는가? 또한 우리가 내세우고 있는 방안들은 올바른 것일까? 독도의 역사와 독도가 우리영토인 증거, 일본과 한국 측의 입장을 살펴보고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논하고
역사교과서왜곡, 독도 영유권 주장, 종군위안부 사죄와 보상, 그리고 고위관료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의 키워드는 한․일 외교사에서 차치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일본의 한반도 강제점령, 즉 ‘일제강점기’라는 대한민국의 과거사와 관련해 발생한 것들인 만큼 양국에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이
교과서의 채택으로 인한 일본의 교과서왜곡문제, 일본위안부와 강제 징용 보상 문제, 문화재 반환, 동해 표기 문제, 야스쿠니 신사 참배문제 등 대립되는 부분이 너무 많았다. 위에 열거한 여러 문제들이 출현할 때마다 한국인들은 자극을 받아 잠재되어있는 반일 감정이 증폭되고 한일 관계는 단숨에
한국 여성들이 자신의 의지로 일본군을 따라다니며 위안부 노릇을 했다는, 일본과 일본군의 입장에서 만든 말이다.『미디어오늘』 2004년 3월 23일
및 강제 징용 자에 대한 보상 거부 등 여러 문제들이 출현할 때마다 한국인들은 자극을 받아 잠재되어있는 반일 감정이 증폭되고 한일 관계는 단숨에
독도를 방치한 일이 없었다”며 한국의 것임을 지적했다.
나이토 세이추, 시마네대학 명예교수
나이토 세이추 시마네대학 명예교수는 영남대 독도연구소에서 간행하는 '독도연구' 제4집에 '다케시마(竹島) 문제의 문제점-일본 외무성의 다케시마 비판'이란 논문을 기고했다. 나이토 교수는 이
한국사가 제외한 것이다. 근래에 중국의 동북공정과 고구려사의 귀속문제, 일본의 교과서에 보이는 역사왜곡 문제, 독도의 영유권에 관한 일본의 외교적 쟁점화 시도 등의 사안들이 연이어 터지면서 역사 내지 (한)국사의 교육을 강화하자는 주장이 여기저기서 강력하게 제기된 바 있다. 이장에서는 중